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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의미를 되새기며...
2022년 04월 08일 (금) 10:31:49 경기북부보훈지청 보상과 유강민 shally78@korea.kr
   
▲ 경기북부보훈지청 유강민.

얼어있던 생명들이 하나 둘 나와서 만개하는 2022년 4월. 1919년 4월에도 저 밑에 얼어있던 독립의지들이 비로소 한반도를 뚫고 나와 전 세계로 만개하던 때였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혁명인 3.1운동이 거세지며 이들을 이끌 조직체가 필요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 연해주, 상하이 등에서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그러다 1919년 4월 10일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말하며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다음 날 4월 11일 각지의 임시정부를 통합하여 상하이를 거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렇다면 임시정부는 왜 여러 장소들 중에서 상하이를 거점으로 택했을까?

우선 서울의 한성정부는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심하니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반면 상하이는 일본의 감시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세계의 여러 국가들과 접촉하기도 쉬웠다.

상하이 안에서도 일본과 동맹을 맺은 영국의 조계지가 아닌, 일본과 이해관계가 제일 없던 프랑스조계지에 자리를 잡으며 시작되었다.

드디어 대한민국은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 되는 민주공화제에 기반을 둔 ‘민국’이 된 것이다. 비록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하나의 정부가 아닌 임시정부였지만 한국역사에서 최초로 수립된 민주정부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대통령은 이승만이었으며, 입법, 사법, 행정을 분리하는 삼권분립까지 하면서 민주공화국의 의무를 최대한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주권국민의 대표기관, 대내적으로는 독립운동을 통합, 지휘,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연통제를 설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와의 비밀 연락망을 만들어 군자금을 조달하였으며, 교통국을 설치하여 국내와의 끊임없는 연락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독립운동을 활성화 했다.

또한 김규식을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로 파견하여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여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국제여론화 시키려는 등 외교활동도 다양하게 진행하였다.

4월 11일 대한민국의 시작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 전문에서도 명시되어 있듯이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나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념과 그 의지를 잊지 않는다면 백범 김구 선생의 소망처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아니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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